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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보고, 듣고, 느끼다

[연극]웃음의 대학




어린이들을 웃기고 울리던 우리들의 둘리가 어린이가 아니라 아기 공룡 캐릭터를 갖게 된 데는 웃지못할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만화가 김수정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른에게 대들고 골탕먹이는 캐릭터는 검열을 피할 수 없어, 사람이 아닌 동물을 주인공으로 만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경찰이 도둑에게 "꼼짝마!" 라고 소리치는데, 도둑이 말을 듣지 않고 도망가면 공권력에 대한 반항이라고 검열에 걸렸었죠 ㅋ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의 일본.
극단 '웃음의 대학'의 작가는 오늘도 자신이 쓴 희극 각본의 검열을 받기 위해 찾아옵니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군인출신의 검열관은 깐깐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전쟁이 한창이 이 힘든 시기에 웃고 즐기는 공연을 허가할 수 없다면서 웃음이 나오는 장면을 모두 없애라고 하질 않나, 로미오와 줄리엣에 "천황폐하 만세!"라는 대사를 넣어오라며 말도안되는 요구사항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요구사항을 들어주며 대본을 수정할 수록 점점 웃기는 장면이 많아지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전쟁시기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이(그 시대는 우리나라가 더 힘들었지) 시간을 뛰어넘어 21세기의 우리들에게 이런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그만큼 이 연극이 훌륭하다는 증거일수도 있고, 아직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저 시절과 비교해 그닥 나아지지 않았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지금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반사람들도 무리없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니 세상이 좋아진걸까요?
작년에 처음 이 연극을 보고 몇 달 후, 인터넷에 경제예측 글을 쓰던 네티즌이 잡혀건 적이 있었습니다.
검열이 감시로 대체된 듯한 느낌을 들더군요.
뭐 지금 제가 쓰는 글도 검열을 받은 건 아니지만, 누군가의 감시망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네요. ㅋ



경제도 힘들고, 나라꼴은 엉망이고, 앞날은 불안한데 (연극의 시대배경과 비슷하군요) 이 연극을 올려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냥 웃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웃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감상평은 올해 초 황정민, 송영창씨가 출연하신 웃음의 대학을 보고 이제서야 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스터를 이전 걸로 올렸어요 ㅋ
이번에 다시 올라온 봉태규, 안석환 씨의 연극도 보러 가야겠어요. 기대됩니다. +_+



사족 : 개인적으로 닭을 키워서 그런지, 냉정한 검열관이 다친 까마귀를 돌봐주는 얘기를 하던 장면도 인상깊었네요 ㅎㅎ